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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08 15: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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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는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명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명품의 품질보다 이름이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중산층의 붕괴로 인한 상처, 그리고 패션


1997년 11월 21일, 최근 20년간 대한민국에 있어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에 걸쳐 전반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IMF 외환위기 사태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문화는 상당히 많이 달라졌습니다. IMF는 외화를 빌려주는 대신에, 대한민국에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요구했습니다. 노동의 유연화, 시장 개방, 정리해고를 통한 구조조정 등은 필연적으로 외화를 빌리기 위해서는 따라와야 하는 변화였습니다. 보다 더 합리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야기되는 개인주의, 돈이 결국 최고라는 천박한 황금 만능주의,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잉태되는 각박함 등은 대한민국 사회가 늘 겪어야 하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겪어야 했던 것이 바로 빈부격차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입니다. IMF 외환위기 사태 이전인 1995년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29.2%였다면, 2012년에는 44.9%까지 치솟았습니다.(2016년 국회입법조사처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 IMF 자료 분석 보고서') 소득이 상위 10%에게 집중되면서, 당연히 중산층이 가져가야 할 소득의 양이 줄어든 것은 물론, 중산층의 수 자체가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의 속도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IMF이후 돈이 곧 존재의 순위를 결정하는 문화가 더 강해진 사회 속에서, 내가 더 이상 중산층이 아니라는 사실은 큰 상처로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현재 문화를 소비하는 주요 집단인 2040세대는 돈이 없으면 얼마나 삶이 비참해지는지를 직접 어릴때부터 지켜봐왔고 경험해왔습니다. '돈이 곧 존재의 가치'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치열한 경쟁을 마다않는 2040대에게, "나는 중산층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마음 속에 주홍글씨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곧 존재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나는 중산층이 아니라는 것은

마음에 깊은 상처가 되는 셈입니다






'중산층 판타지' - 비싼 브랜드를 구매하며 주문을 건다. "나는 중산층이다"


'중산층 판타지'는 바로 이러한 2040 세대가 처한 현실에서 탄생되었습니다. 나는 중산층이 아니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상처를 비싼 브랜드를 구매하면서 덮는 것입니다. "그래, 이런 브랜드를 구매하고 소유한 나는 중산층이야"라고 말입니다.


특히 자신이 자랑하고 싶은 것만 올리는 SNS의 다소 '허세'스러운 문화는 중산층에 대한 기준과 정의를 상향 조정하게 만들고, 역으로 자신의 처지를 더 비관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반 대중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보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있어 보이는 곳을 가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비싼 브랜드가 하나 쯤은 있어주어야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중산층'이라는 프레임 속에 자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40에게 명품은

경제적 열등감을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셈입니다




'중산층 판타지'를 판매하는 패션회사들


해외의 명품 브랜드 시장 조사담당자들이 이 사실을 분석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짝퉁을 사서라도 유독 명품에 집착하는 대하민국 사람들의 심리를 그들도 알고 싶어했으니까요. 사실 유럽에는 '명품'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습니다. 명품 브랜드로 인식하기 보다는 정말 질이 좋고 오래 쓸 수 있는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문화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이 제품이 얼마나 오래쓸 수 있고 좋으냐 보다는, 이것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 수 있는 브랜드이냐가 더 중요한 구매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전략가 입장에서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소비자를 설득시킬 수 있으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고급스럽고 고가의 명품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제품의 퀄리티, 질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있으니까요. (실제로 명품을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 명품이 추구하는 제품의 디테일을 이해하고 사는 사람들은 정말 드물겁니다.) 그리고 중산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노력하면 '구매 가능한' 가격대의 제품을 출시한다면, 브랜드 이익의 최대를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요.



명품의 품질을 꼼꼼히 따져보고 사지 않고

 짝퉁을 구매해서라도 이름을 얻으려고 하는

대한민국 소비자의 태도는 이런 점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식사하며 아낀 돈으로 명품을 산다


생활용품은 다이소에서 구매하면서, 이를 통해 아낀 돈으로 명품을 사는 것은 그런 심리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며 명품 브랜드를 사는 대신에, 그 부족한 부분을 다른 곳에서 절약을 하게 되는 것이죠. 비록 돈을 절약하기 위해 가끔은 편의점에서 식사를 하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택시 대신에 버스를 되도록이면 타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껴 모아 산 명품 브랜드를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겁니다. "그래도 이런 브랜드를 구매하고,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나는 삶의 낭만이 있다"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삶이 옳다 그르다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구조적인 불황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좀 더 합리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명품 브랜드를 구매함으로써 명품이 가진 실용적 편익을 충분히 누리고, 그로 인해 내 삶은 더욱 나아졌는지 말입니다. 중산층임을 표방하기 위해 투자를 했지만, 정말 그 삶에 가까워졌는지 말입니다. 결국 그래서 내가 거액을 투자 한 만큼 나의 삶이 의미있게 바뀌었는지 물어보는 과정은 한 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은 그래서 진보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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